1. 확진자의 통보

 

 2021년 1월 23일 즐거운 토요일 저녁 9시, 한통의 문자가 왔다. 카톡이 아닌 거 보니 단체문자인가 보다.

 내용인 즉,

 

 '사무실에 확진자가 나와서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 판정을 받았다. 오늘부터 이틀 전 방문했던 회사 분들은 검사를 받아보셔야 할 것 같다.'

 

 ......

 

 순식간에 확진자와의 접촉자가 되었다. 

 

 2. 긴급 전화, 카톡 회의

 

 서둘러 사무실에 알리고 검사받을 대상자까지 선정, 같은 건물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에게 연락이 되도록 조치까지 빠른 시간 안에 진행되었다. 나와 우리 팀, 같이 회사에서 저녁 먹은 사람들까지 검사. 너무 늦은 시간이니 일단 취침.

 

 3. 보건소 선별 검사소

 

 이른 아침, 집에서 가까운 역에 설치된 선별 검사소를 가니 확진자와 접촉자는 보건소로 가라고 한다. 서둘러 보건소로 이동.

 20여 명이 있어서 좀 걸리겠거니 했는데 빠른 속도로 검사는 진행되었다. 내 차례가 왔다. 이러이러하니 긴급으로 처리해달라고 했다. 사무실에 함께 근무했던 직원도 지역이 같다 보니 보건소에서 만났다. 웃으며, '별일 없을 거야!'

 임시 검사소에서는 못 보던 모습을 봤다. 입과 코에 키트를 들이밀다 보니 아이들을 기겁을 하며 소리치며 울었다. 어제는 평정심을 유지했는데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와르르 무너졌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마음에 동요가 일고 내 아이까지 검사를 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내가 검사를 마치고 아내도 검사를 하고 왔다.

 

 

 4. 침묵과 언쟁

 

 억울했다. 왜 내가?

 난 마스크를 끼고, 차도 안 마셨으며, 길게 대화하지도 않았다. 사적인 대화도 아니고 업무상 필수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나보고 왜 진작 업무 방식을 바꾸자고 하지 못했냐고?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이런 식이면 앞으로 난 어떻게 일을 해?

 그런데 그건 남자들의 1차원적인 생각.

 

 아내의 걱정은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있는 우리 아이가 혹시나 검사를 받을 상황이 되고, 아프게 되면 가슴이 무너질 것 같아 절규하고 있었던 것. 내가 밖에서 조금 더 우리 가족을 위해 안전하게 다녔으면 하는 것.

 나도 당황했지만, 더 가슴이 철렁했을 아내를 먼저 생각하지 못했다.

 

 5. 심각한 긴장

 

 단연코 태어나서 최고라고 할 정도로 체했다. 하루에 손을 두 번 딴 적은 없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다. 소화제도 두 번 먹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파서 두통약도 먹고, 변기를 붙잡고 우웩~!

 그 긴장은 검사 결과가 문자로 통보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6. 음성

 

 음성이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문자를 받기 전까지 나의 몸 상태를 보면 난 불안에 떨고 있었다.

 음성 문자 이후 아픈 곳은 싹 나았다. 

 

 7. 연락

 

 총 네 곳의 연락을 받았다. 받거나 했다.

 자가격리 통보를 받다 보니 확실히 이해하게 된 프로세스

 

 - 확진자가 검사받은 보건소 : 확진자가 다녀간 내 사무실이 있는 보건소에서 연락이 갈 것이다

 - 사무실 소재 보건소 : 확진자가 다녀간 곳을 소독할 것이고, 역학조사를 해서 자가격리 여부를 주소지 보건소에 통보하겠다

 - 확진자의 주소지 보건소 : 확진자랑 접촉했으니 검사를 받아라. 자세한 건 인천에 물어봐라

 - 나의 주소지 보건소 : 자가격리다. 곧 통보할 테니 집에 있어라

 

 8. 자가격리 구호물품 도착

 

 우리 집은 1층이다. 옆에는 어린이집이 있어서 많은 부모들이 왔다 갔다.

 우리 집 앞에 구호물품 박스를 놓고 가면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된다.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놓기 전에 전화 좀요.....'

 

 놓자마자 받을 수 있게 신경 써주셔서 금방 들여놓았다. 곧이어 들리는 부모들 소리.. 휴....

 

 박스는 아무 표시가 없지만 쇼핑백은 어휴ㅎㅎㅎㅎ
필수품, 소독제! 마스크!
쓰레기는 반드시 여기 담아서 자가격리가 끝난 후에 내놓아야 한다. 음성이면 여기 담은 채로 일반 쓰레기봉투로, 양성이면 수거.
철저히 지키자
뜻밖의 체온계 겟......
1인 기준 구호 식량. 격리 당하기 전 원래 있던 음식들이 있으니 이정도면 충분. Cj, 동원, 사조, 샘표, 오뚜기, 해태, 롯데, 비비고까지...이거 구매한 담당자의 고민이 느껴진다ㅋㅋㅋㅋ
인천 서구는 격리자의 심리 안정을 위해 새싹 키트를 준다. 비타민이라는 채소다. 먹을 수 있단다^^

 

9. 담당자 배정, 어플 실행

 

 무려 이틀 후, 담당자가 지정되었다. 난 심각한 관리대상이 아니라 그런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 안심이 되기도 하고^^;

 담당자까지 지정되고 어플을 실행하고 나니 정말 자가격리가 실감이 됐다. 원래도 했겠지만 더 열심히 체온 체크도 하고. 

 

자가격리 앱을 실행하려면 담당공무원 ID를 받아야 하고, 이후 점검 안 하면 빨강, 실행하면 파랑으로 바뀐다.

 

10. 뜻밖의 축하

 

 어쩌다보니 격리 기간에 생일이 있었다. 아내가 카카오톡 친구 리스트에 내 생일이 안 뜬다며 얼른 설정을 하라고 한다. 

 어라? 생일 표시가 되는 게 내가 설정해야 하는 거였구나ㅎㅎㅎㅎㅎ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리고 오전에 이어진 선물 러시......

 격리 기간에 받은 선물들이라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아프지 말고 잘 쉬다 오라는 많은 위로가 힘이 되었다.

 모두 정말 감사해요!!!!!

 

11. 여유와 답답함

 

 일단 나와 내 가족 건강에 이상은 없으니 마음이 놓였다. 방역수칙을 잘 지켰으니 격리 해제 전 검사도 당연히 음성일 거란 믿음도 있다. 출근도 안 한다. 둘째 날부터는 팀원들의 업무 부담을 덜기 위해 재택근무를 했지만 중요한 건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이 처리하니 부담도 없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좋지만은 않았다. 어딜 가지도 못하고 움직임도 적어지고 햇빛을 못 보니 이게 뭐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우울하진 않았지만 답답함이 느껴진다.

 

12. 해방

 

 길고 긴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출근했다. 나는 계속 재택근무로 많은 일처리를 하며 바둥거리고 있었지만 직원들은 내가 긴 시간 쉬다 온 줄 안다.

 뭐 어찌되었건 괜찮다. 아무 일 없었고, 앞으로도 방역수칙을 잘 지키며 조심할테니까.

 

13. 여전히 조심 또 조심

 

 최근 확진자가 폭발하며 거리두기 단계는 강화되고 사그라들 줄을 모른다.

 지난 겨울의 이 아찔한 기억, 마음 속에 깊이 새기고 조심 또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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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4개월 째 태교 겸 취미 겸 장차 부업 겸해서 캘리그라피와 수채화 앤드 색연필 일러스트 등 그림 그리기를 배우고, 즐기고 있다. 마음이 맞는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몇시간씩 집중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그래서 더 임신 스트레스 없이 잘 이겨낸 것 같다^^ 
 
 원래도 예술쪽, 창작하는 쪽으로 잘하는 여보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 수준급으로 해낼줄이야! 용돈 봉투나 축의금 봉투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예쁜 카드를 만들어서 선물하는 것을 보면 정말 짭짤한 부수입으로도 할만해 보이기도 한다. 잠시 일을 쉬는 동안 취미와 미래 준비를 동시에 잡은 여보가 정말 고맙♡
 
 그림을 그리는 아내 옆에서 나도 따라서 사각사각~ 그림을 그려봤다.
 어릴적 비싸서 맘껏 사서 신지는 못해 그림으로 그려보았던 나이키 운동화도 그려보고, 우리가 좋아하는 캐릭터 토토로도 따라 그려보고. 
 
 그리고 내 마음이 투영된 그림도 슥슥~
 불길 속을 헤치는 우리 동료들의 든든한 뒷모습 그려보기~
 비록 아직은 보고 따라서 그려보는 수준이지만, 우리 소방의 살아있는 눈매와 우리가 뚫고 지나갈 뜨거운 열기는 충분히 담아낸 것 같다. 
 
 지금 우리의 이런 취미, 계속 같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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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전공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지하철역에 있는 장애인 등 약자 전용 엘리베이터를 다른 사람이 타도 되는걸까? 노약자석, 임산부석에 그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앉아도 되는걸까?"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자리에서 결론은 '된다'였다.
힘들고 피곤한 사람 누구나 필요하면 앉고 이용해도 된다고. 모두를 위한 자리라고.
다만, 임산부, 노약자가 있으면 바로 자리를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동안 아내와 같이 다닐 때는 항상 우리 차로 움직이니까 전혀 못 느끼고 있던 감정을 오늘 느꼈다. 너무 졸려서 차를 두고 지하철로 이동했는데 임산부 전용석에는 아주마니께서 실눈을 뜨고 앉아계시고, 그 누구도 자리에 앉으라고 말하는 이 하나 없었다. 물론 아직 배가 엄청 많이 나오지는 않았고, 임산부 뱃지가 달린 가방도 내가 들고 있어서 아무도 인지를 못 했을지도 모른다.  
 
 금방 내릴거라서 이해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혼자 다닐 때 서서 가면 속상하고 말도 못하고 눈치보였을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임산부의 몸으로 눈치보이고 속상한 마음으로 다니게 하는 주변 사람들이 조금 밉기도 하고~ 
 
 꽉 찬 자리, 힘든 다리,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힘들 것이다. 자리가 비어있는데 힘든걸 참아내며 그 자리들을 앉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힘들고 아프면 그 순간엔 장애가 있는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자리에 앉았으면 언제든 그 자리에 앉아야 할 사람을 위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신경은 쓰면서 누려야 한다는 것. 
 
 다들 어떻게 세상에 태어났나 딱 한번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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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한 시간 동안 널 방치했다고

촉촉한 마음이 그리 쉽게 마르더냐


이리 오너라 따뜻한 마음에 푹 빠져보자

그것의 이름은 물이니

이내 너의 타고난 모습과 같이 원래대로 돌려 놓을 것이다


살살 담근다

섭섭했던 마음이 흩어져 한 잔 컵 속의 그림이 된다


그렇게 다시 쓰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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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단지를 진입하는데 입구 바로 앞에 초등학생 남자 아이 셋이 놀고 있었다. 난 진입하자마자 우회전을 해야했는데 아이들이 비켜주지 않았다.

 차를 발견한 두 명의 아이는 먼저 피했다. 한 아이는 자동차가 온 것을 전혀 몰랐는지 그대로 있었다.

 창문을 내리고 아이한테 잠시만 나와달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 뒤로도 단지로 들어오려는 차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경적을 울리지도, 비켜달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잠시 후 다른 아이들의 말을 듣고는 길을 비켜줬다. 그리고 나는 차를 움직였다.


 난 아주 잠깐이지만 내 시간을 지체한 것이었다. 아파트 단지 입구가 막히니 바깥 교통도 막혔을 것이다. 불편함이 맞다. 경적을 울리거나 비켜달라고 했으면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불편함이다.


 그렇지만 이런 불편함은 아이들을 위한 어른의 의무가 아닐까?

 아직 좀 더 섬세한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우리 어른들이 조금 불편을 겪더라도 참고 기다려야 한다.


 나는 같은 상황이 또 오더라도 그렇게 마냥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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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먹을 꽉 쥐던 때가 있었다

 주먹을 쥐고 하늘 높이 들며 내 목소리도 하늘을 향하던 청춘

 

 주먹을 꽉 쥐고 악을 쓰던 때가 있었다

 버티고 또 버티며 내 꿈을 향해 매달리던 날들

 

 두 주먹이 땀에 젖어 미끄러질 것 같아도 놓지 않았던 꿈을 향해 도전한 고통의 시간


 그렇게 꽉 쥐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지금 이렇게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했던 그 열정과 땀


 굳은 살이 배기고 팔이 후들거리는 것을 다시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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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날 두고 간 것은




장에 좋은 따뜻한 보리차, 위장장애 해소 양배추, 아침엔 사과

내 몸에 좋은 3총사를 두고


오늘 빨리 치뤄야 할

나를 위한 일이 아닌 것을 위하여 달려갔다


남겨진 것은

그래도 그 일을 위해 달려간 나를 위한 아내의 마음


미처 건내주지 못한 아내의 마음


내가 두고 간 것은

내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우리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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